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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의 어둠

통, 통. 싱크대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딱딱한 감촉이 뺨에서 느껴져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려 서서히 정신을 깨워갔다. 상체를 일으켜 결리는 어깨를 한 차례 주무른 후 등을 뒤로 젖혀 오랜 시간 굽혀져 있어 뻐근해진 허리를 뼈 소리가 나도록 풀어내었다. 하아, 짧게 한숨을 쉬고 의자에서 일어나 방울방울 물을 떨어트리고 있는 싱크대의 수도를 꼭 잠갔다. 언제 잠들었는지, 언제부터 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부족한 수면 탓에 관자놀이에 지끈거림이 일었다. 소음을 일으키던 물방울 소리가 사라지니 넓은 집 안에서 소리를 일으킬 것은 자신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정적, 정적 그리고 정적.

이곳은 후루야 레이의 거처. 철저한 보안을 거친 검증된 자만이 자신의 허락으로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다. 조직 괴멸의 작전을 이루고 기뻐할 틈도 없이 뒤처리에 치이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던 후루야를 보다 못한 직속 부하와 상사들에게 등 떠밀려 청사로 출근하지 않고 자택에 남게 하였다. 원래 말이 나온 것은 휴가와 심리 상담을 동봉하라는 이야기였지만 후루야는 고집을 부려 전부 마다하고 원래 자신이 처리해야 했던 서류들을 들고 공안에서 준비해준 거처에서 생활하며 남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얼마간은 청사에서 지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바쁜 일상이었다. 그래도 역시 반듯한 모습으로 있지 않아도 되고, 완벽한 상사의 모습을 내비치지 않아도 되는 것에서 이미 부담은 덜어졌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편한 생활이었다. 일 처리를 위해 책상에 붙어있고, 가끔 오는 직속 부하에겐 이미 너덜너덜한 모습까지 보였었기에 집에 들이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물론, 약간의 걱정은 들었지만. 그때에만 잠깐 엄격한 상사를 다시 연기하면 부하는 직책에 밀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 걱정이, 조금은 좋게 느껴질 때도 있었지만.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없앴다. 혼자인 자신에겐 쓸데없는 생각일 뿐이다. 머릿속을 시끄럽게 만들던 생각들을 차례차례 비우니 이내 다시 자신이 서있는 공간으로 의식을 돌릴 수 있었다. 공안에서 준비해준 이 집은 혼자서 지내기엔 쓸데없이 넓은 곳이었다. 아무로 토오루의 집에서 지내던 날들을 전부 정리하고 다시 이 곳으로 돌아왔을 땐, 너무도 적막한 느낌이 맴돌아 깨끗이 치워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폐가와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지금은, 그것에도 다시 익숙해졌지만.이 넓고 생활감이 들지 않는 곳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었다. 가끔 이런 식으로 조용해 질때에는 자신의 이전 거처에서 함께 살던 작은 생명체가 생각나곤 했다. 그 작은 아이는 어쩌면 그렇게 자신의 기분에 민감한지. 자신이 우울한 기분이 들 때에 면 자신이 티 내지 않아도 먼저 다가와 부빗거려 주고는 했었다. 몇 번이나 그렇게 자신의 기분을 알아차려 주었기 때문에, 나중에 들어선 자신이 먼저 가 품에 꼭 끌어안고 힐링하고는 했다. 지금은 위장 동료 신분이었을 때의 친했던 사람에게 맡겨 이곳에는 없었다. 똑똑한 아이이니 아마 자신의 말이 아니더라도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대상에겐 경계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쯤 그 작은 카페에서 귀여운 마스코트 노릇을 하고 있겠지. 그 온기가 조금은 그리워졌다.

 

 

손 안에 바짝 들어왔던 따뜻한 털 뭉치의 감촉을 추억하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거실의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놓인 긴 소파에 다가가 덜퍽 쓰러져 누웠다. 가구가 자신이 무게를 버티는 소음이 끼익끼익 울려 퍼졌고, 이내 흔들림이 안정되고 소리가 사라지면 다시 고요함이 돌아왔다. 자신의 키보다 조금 더 짧은 길이에 옆으로 누워 다리를 살짝 구부리며 어깨를 움츠렸다. 서늘한 냉기가 바닥에서부터 빠르게 올라와 자신이 있는 곳까지 도달한 느낌이 들었다. 피곤함에 한껏 예민해진 몸은 별것 아닌 추위에도 반응해 오한을 들게 했다. 아픔까지 느껴지는 듯한 닭살 돋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 편안히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일조차 손에 잡을 수 없고 자신 혼자 남게 될 때면 쓸데없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럴 땐 일부러 일에 대한 생각으로 사고를 돌리며 뇌를 쉬지 않게 했다. 하지만 오늘은 그것조차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자신도 그저 지쳐버려, 지금은 사고가 흐르는 방향으로 그대로 놔두며 뇌의 자극을 받아들였다. 사고가 흐르는 대로, 제재를 두지 않고, 멈추지 않고.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어느샌가 그 날의 옥상에 올라가있었다. 눈 앞에 번지는 붉은 피의 형상, 가만히 자신을 향해 있는 사람의 형체와 시도때도 없이 굴러가는 크래커. 똑딱똑딱. 그 날의 과거에도, 지금의 현실에도 존재하지는 않는 많은 그림자들이 술렁이고 있었다. 고요히 그 상황만을 상상할 수는 없었다. 벌레가 기어다니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배신에는 제재로 답한다. ' 그 목소리가 다른 소리들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 스카치 ' 자신의 목소리조차 가려졌다. ' 정신차려 ' 그는 죽어있을 뿐이었다. ' 이미 늦었어 ' 정신차려, 그렇게 외쳤다. ' 아쉬운건, 휴대폰을 ' 계속 외쳐대었는데, 어째서 소리가 닿지 않는 거야. 왜 나에게 와주지 않는 거야. ' 라이 ' 아냐, 아냐. 이걸 말하려는 게 아니야. ' 심장이 뛰지 않아. ' 계속 그렇게 외쳐봤자 소용없어. 이미 그는 이곳엔 없는걸. 지금 정신 차려야 할 건 바로 나야.

 

 

그래.

3, 2, 1.

 

그리고, 제로.

 

 

마법의 주문을 외우듯 속으로 카운트다운을 외쳤다. 감았던 눈을 슬며시 떴다. 어느샌가 눈을 감은 건지, 그것조차 알 수 없었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지네가 머리 위를 기어 다녔다. 머리카락을 사이를 누비며 두피를 헤치고 지나가는 그 감각에 미칠듯한 간지러움이 일었다. 하지만 몸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알 수 있었다.

 

 

실제가 아니니 반응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지네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 많은 다리를 순서대로 움직여 자리를 옮겨 다니는 생물은 어느새 두피를 내려와 얼굴로 향했다. 옆으로 누운 탓에 얼굴 정면으로 내려오진 못한 지네는 귓바퀴를 돌며 더듬이를 흔들거렸다. 기웃기웃, 잠시 망설이는 듯 멈춰서 머리를 이리저리 돌리던 지네는 귓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사각사각, 자각자각. 짧은 다리를 버둥거리며 점점 깊숙이 파고들어 가는 붉은 색의 몸통이 시야 구석에서 점점 사라져갔다. 시야의 붉은색이 사라져갈수록 그것에 반비례해 귓속의 이명은 점점 커져갔다. 사각사각, 사각사각, 사각사각. 외이도를 따라 점점 깊게 파고들어 가 긴 몸통은 이미 귀속을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머리부분은 이미 고막에 도달해 더듬인지 다리인지 모를 것으로 잘각잘각 고막을 긁어대고 있었다. 귓속에서 찌르는 듯한 아픔이 밀려왔다.

 

 

아니야, 아프지 않아. 아프지 않아.

 

아픔이 밀려왔다.

 

아프지 않아.

 

아픈걸.

 

 

고막이 찢기고 있었다. 발톱으로 조금씩, 조금씩 틈을 벌려가고 있었다. 이내 구멍이 생기고, 그 틈을 비집고 머리를 들이미는 것이 느껴졌다. 다리가 꾸물거리며 점점 안으로 파고들어갔다. 북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이건 환각이야. 그래, 알고있다고.

 

 

지네는 더더욱 안으로 들어갔다. 신체의 깊숙한 곳으로,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곳으로. 어디를 어떻게 타고 들어가고 있는거야. 그건 알 수 없었다. 이제 신체의 밖으로 튀어나온 부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까 두피에서 느껴지던 감각의 길을 그대로 따라 머리 속을 기어다니고 있었다. 귀에서 들어간 그대로 직진해 안구의 아래를 기어다녔다. 시신경을 헤치고 긴 몸통을 이리저리 꼬아가며 움직이다가 이내 위 쪽으로 헤치고 기어올라가더니 뇌표면을 슬슬슬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혐오감이 치솟았다. 하지만 일어날 수는 없었다.

 

 

뇌표면을 긁어내리며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다리가 느껴졌다. 아, 뇌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정수리의 바로 앞부분의 안쪽에서 간지러운 감각이 전해져왔다. 두정엽, 대뇌, 명칭 같은 건 몰라, 그런 걸 꼭 알아야 하는 거야? 지네가 뇌를 파고들어 갈수록 뇌의 활동은 둔해져만 갔다. 지네의 경로를 따라가며 예민하게 느껴지던 감각조차 무뎌져 갔다. 의욕도 나지 않았다. 이대로 뇌가 잠식당해 멍하니 있어도 괜찮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기 시작했다. 무기력하고, 무력하고, 쇠약하진 자신의 정신은 더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점점 가라앉아갔다. 이대로, 이대로 끝으로 내려간다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채로 가라앉아간다면 ?

 

 

빠아아아아아아아앙

 

 

닫혀있는 창문의 밖에서 커다란 경적이 들려왔다. 귓가에 때려 박듯 길게 울리는 커다란 소리가 정적을 깨우며 지나갔다. 깜빡, 눈을 깜빡였다. 자연스럽게 숨을 쉬는 것처럼 평소엔 자각조차 하지 못하는 눈의 깜빡임조차 알아채다니, 갑작스레 정신이 현실로 끌려온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아까의 환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여전히 쓸데없이 넓은 집에, 거실에, 소파 위에 무기력하게 누워있는 자신이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철저히 관리하는 집에서 지네나 시끄럽게 웅웅거리는 소리는 내는 벌레는 찾을 수 없었다. 여전히 정적만이 머물고 있을 뿐.

 

 

조용한 공간.

 

끝없는 정적.

 

편안한 정적. 기분 나쁜 소음. 소리를 내는 것은 자신뿐이었다.

 

 

자신조차 숨을 멈춰버리면 이곳은 완전한 고요의 공간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공간에 계속 혼자 있는 것은 충동적인 생각이 들게 했다. 밀려오는 우울의 파도에 저항조차 하지 않고 그저 가라앉은 채 이 소음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자신의 숨이 멎는 상상을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조직의 복수를 위해 노크인 버본을 죽이러 온다면.

예를 들어, 자신을 거슬린다 생각하는 썩은 상부의 사람이 있다면.

예를 들어, 자신이 직접 이 질긴 숨통을 끊어버린다면.

 

 

자신은 혼자서 너무도 오래 살아있었다. 주위의 누군가가 죽어나가도 자신만은 항상 멀쩡하게, 아니면 아슬아슬하게 이 숨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 최선을 다해 행동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날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찌릿하게 아파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사실은, 그 아픔의 이유조차 모르고 있었다. 자신은 살아남아,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끝마치는 것에만 집중하던 시절에는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렇게 여유로운 시간이 생겨 생각할 여지가 주어진 것에 나는 알아챘다. 꿈 속에서조차 볼 수 없었던 그 얼굴이 눈 앞에 아른거리며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억눌러왔던 아픔이 점점 차올라왔다. 그리운 얼굴들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게 되었다. 그들의 사이에 끼여 살아가는 것은 그리운 향수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견딜 수 없이 괴롭게 만들기도 했다. 아파, 아파, 너무도 아파. 나를 감싸주던 소중한 것들을 전부 잃은 그 아픔은 어느샌가 나를 잠식해 깊은 우울 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었다.

 

 

한 번, 눈을 꾸욱 감았다 떴다. 여전히 환각은 보이지 않았다. 손을 뻗어 소파 옆에 놓여있는 조그만 서랍장에서 지급받은 호신용의 권총을 꺼내려 팔을 움직였다. 휘적휘적하는 손길의 끝에 딱딱한 철의 감촉이 느껴져 움찔하면서도 조심스레 꺼내 들었다.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퍼졌다. 또, 짜증 나는 소음이야. 미간을 찌푸리며 나른한 눈에 힘을 주었다. 흐려지는 시야가 조금은 똑바르게 되어 무거운 몸을 찬찬히 일으켰다. 굽힌 다리의 한쪽을 끌어안으며 권총의 안전장치를 살짝 건드려보았다. 머릿속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였다.

 

 

예를 들어, 예를 들어, 예를 들어 수많은 가정의 세계를 넘나들며 상상해보아도 어느 곳에서나 자신이 죽는 미래밖에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죽은 세계, 내가 죽은 뒤의 세계는 과연 나의 세계라고 할 수 있는 걸까. 이대로, 이 총을 자신의 머리에 대고 쏴버린다면? 자신의 심장에, 그날의 그 아이처럼. 온몸이 산산조각났을 그 두 사람처럼. 몸에 파편이 박히고 피를 흘리고 죽어갔을 그처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점점 가라앉을 뿐이란 것을 알지만. 그래도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들을 기억해야 했다. 나에게 남은 것은 그것뿐이니까. 아니면, 자신이 지금 들고 있는 이 물건으로, 뭔가의 해결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지긋지긋한 우울의 끝을 볼 수 있는게 아닐까?

 

 

사고의 방향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있었다. 자신이 정말 실행할 수는 없을 거라고, 아직 자신을 붙잡는게 있다는 것을 알고있었다. 아, 그게, 그게 뭐였지? 나에게 남은 게 대체 뭐였지? 무심코 표정이 일그러졌다. 울상을 짓고있는 표정이, 움찔거리며 얼굴 근육을 진동시키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고막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와 질끈 눈을 감았다. 남은 다리 한 쪽도 끌어모아 소파의 등받이에 옆으로 기대어 다리 사이에 고개를 파묻었다. 차임벨의 소리, 쾅쾅거리는 시끄러운 소음. 어차피 환상인것을, 누가 찾아온다고 이런 자꾸 환청이 들리는 건지. 언제쯤, 언제쯤 이 소리들은 나를 놔줄까. 언제 자신은 아무런 소리도 없는 고요한 공간으로 갈 수 있을지 고뇌하며 소리가 멎기를 기다렸다.

 

 

" 후루야군. "

 

 

방 안을 시끄럽게 만들던 소리가 멎기 무섭게 다급한 숨소리를 섞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날과 겹쳐지는 낮은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로, 자신의 이름을 부르다니. 나의, 진짜 이름을.

 

 

" 후루야군. "

 

 

이 목소리로 후루야 레이를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것은, 도대체 얼마 만이지? 애초에 그는 합동 회의 이후에 만난 적이 없었다. 조직과의 전쟁터가 되었던 당국의 수사관이었기 때문에 자신에게 주어진 일이 산더미같이 쌓여 본국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배웅도 자신은 넘기고 있었다. 그렇게 넘어간 것이 한 달 전인데. 왜, 그날의 환상처럼, 그 환청이 반복하던 소리가 아닌 자신의 이름을 ㅡ ?

 

 

" 이쪽을, 봐주지 않겠나. "

 

 

그러자, 정말 무심결에. 자연스럽게 파묻었던 고개를 살짝 들고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나른한 눈빛이 그만의 공간에 침입한 이방인에게로 향했다. 태연한 듯 보이는 그 눈은 자세히 본다면 아무것도 담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비어있었다. 그의 경찰로서의 본능이 자리 잡아 단지 평소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러니 그가 이리도 망가진 것을 누가 알 수 있나, 아카이는 속으로 혀를 찼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고 후루야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이 눈앞에 있는데도 감정 없이 있는 그 모습은 정말 많이 낯설었다. 본국으로 떠날 때조차 나타나지 않았던 그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혼자서 망가져 가고 있었다. 그의 부하, 상사들. 그들도 어느 정도의 짐작으로 그를 쉬게 한 것이겠지만 자세한 상태는 모를 것이었다.

 

 

" ... 아카이, 슈이치..? "

 

 

이제야 상황을 파악한 것인지 멍하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 모습에서조차 독기는 찾아볼수도 없었다. 얼마나 망가지고 무기력해진것일까. 얼마나 우울에 빠져든 것인지, 이런 그를 두고 떠나는 것이 못내 마음이 편치않아 빠르게 자신의 할 일만 끝내고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며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자신의 마음에, 능력에 대한 인정과 호감 그 이상으로 들어오게 된 그를 두고 볼 순 없었다.

 

 

" 왜... 당신이 여기..? “

 

" 너를 두고 떠날수가 없었어. "

 

 

어느샌가 자신의 마음에 들어온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것조차 상관없을 정도로 이미 자신의 마음속에 깊숙히 자리잡은 그를 붙잡고 싶었다. 이렇게 우울의 깊은 늪으로 빠져가는 그를 볼 수 없어서, 그러니 자신이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였다.

 

 

" 후루야군, 너를 좋아하고 있다. "

 

 

앞뒤 정황을 전부 자르고, 어떠한 설명도 붙이지 않은 채 말한 고백은 후루야의 뇌를 휘젓고 지나갔다. 멍하니 들은 그 말을 인식하고, 잘라내고, 곱씹어 드디어 뜻을 이해하게 된 후루야는 그에게 되물었다.

 

 

" 좋아해요? “

 

" 그래. “

 

" 당신이? “

 

" 그래. “

 

" ... 나를? “

 

" 그래, 너를 좋아하고 있어. “

 

 

어째서요? 놀란 목소리로, 정말 이해할 수 없단 어조로 물은 후루야에 자신은 한동안 짓지 않았던 부드러운 미소를 입에 담았다. 모르겠어. 그렇게 대답한 자신을 입을 살짝 벌린 채 보고 있는 시선이 뜨겁게 느껴졌다. 사실은 알듯 모를 듯 자신의 안을 치고 올라오는 감정의 기반이 되었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지만, 그것들을 이유로 말하기엔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말할 수가 없어 모르겠다고 했을 뿐이었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그에게 하나하나 알려줄 생각이었다. 천천히 상냥하고, 다정하게. 그러니 지금은, 그 시간을 만들어야 할 시기였다.

 

 

" 레이. "

 

 

이름을 부른 것을 화낼까. 허락 없이 친한척하지 말라고 성을 내려나. 그렇게라도 다시 예전처럼 기운차게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기적이겠지.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밀어붙인 것부터가 이미 이기적인 짓이었다. 그러니, 아주 조금만 더 멋대로 하게 해줘. ' 자기 멋대로만 하지 말라고요, FBI. 협력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모릅니까? ' 자신에게 성을 내며 외치던 그 목소리를 정말 좋아했기 때문에, 내 멋대로라도 너를 이곳으로 돌려내고 싶었다.

 

 

" 네가 있는 이 세계를 지킬 수 있게 해줘. 우울한 너를 곁에서 지켜보게 해줘. 너와 함께 이겨낼 수 있도록. 내가 너의 곁에 있는 것을 허락해주겠니, 레이. "

 

 

함께 고비를 이겨낸 우리가, 언제까지나 함께있고 싶다고 느껴버린거야. 너를 그 우울에서 끌어내어주고 싶어. 네가 우울했던 그 순간이 있었던만큼, 그 이상의 행복을 함께 보내고 싶은거야.

 

 

" 레이, 나는 ㅡ "

 

 

너를 좋아하게 된 나는.

melancho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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