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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치는 요리를 잘해요.’

 

 

버본은 그 사실을 하루에 세 번도 더 라이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국물 내는 솜씨가 얼마나 훌륭한지, 간 맞추기가 얼마나 정확한지, 서로 다른 재료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맛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맛 개발에 힘을 쏟는지 등등. 덕분에 임무가 끝난 좁은 아지트에서는 스카치의 요리 솜씨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기 일쑤였다.

 

 

“어때요, 스카치가 직접 만든 음식의 맛은? 미국에서 먹던 미국식 일본요리와는 차원이 다르죠?”

 

“……확실히 맛있군. 가게에서 파는 음식과는 다른 느낌이야.”

 

“하, 어디 가게 음식이랑 비교를 해요? 괜히 자취생들이 집밥 타령을 하는 게 아니라고요. 정말, 이런 맛있는 요리를 매일같이 먹을 수 있다는 걸 감사해야 한다고요. 알겠어요, 라이?”

 

“그 중요한 스카치 본인이 정작 이 자리에 없으니 말이지.”

 

 

라이는 비어 있는 자리를 곁눈질하며 말했다. 버본의 말문이 막혔다. 정보상 버본이나 저격수 라이와는 달리 다른 지역으로 나가는 일이 잦은 서포터 스카치는 오늘도 어김없이 아지트로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뭐, 상관없잖아요? 그 바쁜 와중에도 저희들을 위해 한상 가득 차려 놨다는 게 중요한 거죠.”

 

 

버본은 새침한 표정을 지었다. 라이가 앉아 있는 위치에서는 절대 보일 일이 없을 각도로 교묘하게 붉어진 얼굴을 돌리며, 버본은 햄 샌드위치를 입에 물었다. 일본된장과 마요네즈의 조합이 독특한 풍미를 내며 짠맛과 단맛이 동시에 느껴졌다.

 

 

“비록 함께 있지 않더라도, 스카치가 만든 요리는 우리 옆에 있잖아요. 우린 감사하는 마음으로 맛있게 먹기만 하면 돼요.”

 

 

말을 이으며 버본은 라이 앞에 놓인 밥그릇에 손을 뻗었다. 반찬을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벌써 밥그릇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라이, 밥 더 먹을 거죠?”

 

 

밥만 많이 먹었다는 건 그만큼 밥이 맛있었다는 걸까? 아니면 먹을 만한 반찬이 없어서 맨밥만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긴 걸까? 어느 쪽일까를 고민하는 버본의 맑은 파란 눈빛이 마치 첫사랑을 눈앞에 둔 소녀처럼 바들바들 떨렸다.

 

 

**********

 

 

시간이 흘러, 그로부터 약 5년 후.

 

버본이라는 이름 대신 후루야 레이라는 이름.

 

 

나이도 24살에서 29살로 늘어났고, 직급도 경부보에서 경시로 승진했다. 아마 카라스마 조직 궤멸에 일조한 공훈까지 인정받는다면 곧 경시정으로 승진하게 될 것이다. 공안 경찰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실수나 범죄를 저지르거나, 혹은 외교적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은─예를 들면, 협력 수사 때문에 일본에 와 있는 다른 나라 수사관에게 시비를 건다거나.

 

 

“잠깐, 아카이!! 잠깐 멈춰 봐요. 스톱!!”

 

“갑자기 왜 그러나, 후루야 군. 사람을 목전에 두고 소리를 지르다니, 아무리 나라도 놀랄 수밖에 없잖은가.”

 

“후루야 군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죠? 게다가 뭐? 놀랐다고요? 놀란 건 이쪽이라고요! 당신 도대체 그게 무슨…….”

 

 

후루야의 눈길은 아카이의 손으로 향했다. 점심시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초라한 모양새의 칼로리 메이트 한 개. 그것도 온전한 한 개가 아니었다. 어제 먹었는지 그저께 먹었는지는 몰라도, 반 정도 베어 물은 잇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저걸 먹고 무슨 힘을 내겠다고!’

 

 

카라스마 조직 궤멸 이후로 남은 잔당 처리 때문에 일본에 남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FBI의 사정을 후루야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커피 마실 시간, 수다 떨 시간, 밥 먹을 시간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아카이 슈이치 정도라면 아무리 살인적인 업무량이라도 반나절 정도면 뚝딱 해치우는 사나이 아니던가. 그런데 무슨 아이돌 가수도 아니고, 저런 새 모이만도 못한 식사는 뭐란 말인가. 후루야는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후루야 경시, 아카이 수사관이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건가?”

 

 

제임스가 어느새 아카이 자리 옆으로 다가와 변호하려는 듯 굳건하게 서 있었다. 그의 옆에는 세트로 캐멀도 같이 붙어 있었다. 둘 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표정에서부터 후루야의 태도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이 보였다. 후루야가 또 아카이에게 되도 않는 트집을 잡아 구박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후루야는 결국 불평을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식사 때문에 한마디 하려고 했을 뿐입니다.”

 

 

후루야는 말투를 누그러뜨렸다.

 

 

“칼로리 메이트 한 개, 아니 반 개로 식사를 때우다니, 평소 처리하는 업무량을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됩니다.”

 

 

제임스와 캐멀이 아연실색했다. 그러니까 그걸 네가 왜 신경쓰는데, 괜한 참견이라고 한마디씩 얼굴에 씌어 있었다. 후루야는 괜히 엉뚱한 오해를 사기 전에 선수를 쳤다.

 

 

“아무리 그래도 특별 에이전트 식사가 그게 뭡니까. 아무리 업무차 머무른다고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일본은 저희들 공안의 영역입니다. 손님이나 마찬가지인 FBI 특별 에이전트가 점심을 칼로리 메이트로 때우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저희들이 욕먹습니다.”

 

“세간의 눈길이나 윗선의 압력 말인가? 그런 걸 걱정하는 사람이었던가, 후루야 군. 성격이 많이 바뀌었군 그래.”

 

“성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효율적인 업무진행을 위한 적정 수준의 접대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고요. 이렇게 보여도 접대는 섭섭하지 않게 해드릴 자신도 있습니다.”

 

“됐어, 후루야 군. 국빈 대우를 받고 싶어서 국가공안위원회 사무실을 빌려 쓰는 것도 아니고. 식사는 잘 대접받고 있다고 상부에 잘 보고해 놓을 테니 쓸데없는 걱정은 안 해도 되네. 잔당 처리가 급한데 시시하게 식사 대접에나 신경 쓰고 있다가 일을 그르치면 공안 경찰의 망신 아닌가.”

 

 

정론이었다. 틀린 곳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눈은 자꾸만 아카이의 손으로 향했다. 잔당 처리 업무를 시작하고 나서 아카이가 점점 몸이 마르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은 알까. 눈 밑에 내려온 다크서클이 점점 더 그 색깔과 깊이가 진해지고 있다는 것도. 영양부족을 의미하는 머리카락 갈라짐이 흘끗흘끗 보인다는 것도.

 

 

“그렇게 해주신다면 감사하지만,”

 

 

하지만 절대로 진심을 말할 생각이 없는 후루야는 일단 한 발 물러났다. 아카이가 죽을상을 하고 있는 건 안쓰러웠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기에는 보는 눈도 많았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건강에도 신경을 써 주세요. 공안위원회 건물에서 사람이 쓰러져 응급실로 실려 가면 저희가 곤란합니다. 아무쪼록 환자가 나오더라도 조용히 해결 부탁드리죠. 그럼 이만.”

 

 

서두르듯 후루야는 사무실을 나왔다. 뒤에서 따가운 시선들이 자신의 등으로 쏟아졌다. 아마 자신의 말투가 버릇없다는 둥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둥 말이 나오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후루야는 지금 반쯤 후회하고 있는 중이었다. 결국 말라 죽을지도 모를 아카이를 저 사무실 안에 놓고 그대로 나온 셈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후루야는 생각에 잠겼다. 조치를 한시라도 빨리 취하지 않으면 내일도 FBI 사무실로 쳐들어가 무슨 말을 또 하게 될지 모른다. 정말 사랑은 먼저 시작한 쪽이 지고 들어가는 말이 있다고는 하지만, 승진을 목전에 둔 입장에서 더 이상 주변으로부터 이상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카자미,”

 

 

후루야는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카자미를 호출했다. 카자미는 아카이만큼은 아니지만 그 못지않은 피로감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 FBI 쪽 스케줄이 어떻게 되지? 언제쯤 업무가 끝나는지 대략적인 시각이라도 좋으니 알아보도록.”

 

 

***********

 

 

그날 밤.

 

 

「철컥.」

 

 

후루야는 아카이의 집 문 앞에서 피킹을 시도하고 있는 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공한 후루야는 소리를 내지 않고 깜깜한 방 안으로 들어왔다. 불을 켜자 공안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본 대로 깔끔하면서도 살풍경한 방이 드러났다. 정말 사람이 살고 있는 것 맞나 싶을 정도로 가구며 장식 하나 없었다.

 

 

‘그런대로 집은 깨끗하게 해 놓고 사는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하는 건가.’

 

 

후루야는 손에 들고 있던 비닐봉투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아카이를 위해 사 온 수많은 채소며 과일, 육류 등등 각종 식재료들이 그 안에 넘치도록 들어 있었다. 부엌으로 들어가 냉장고를 열자 칼로리 메이트를 비롯한 부실한 영양제들이 겨우겨우 한두 칸을 메우고 있었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밥도 제대로 안 해 먹고 있네. 세상에, 게다가 이 칼로리 메이트, 소비기한이 벌써 지났잖아?”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 냉장고였다. 후루야는 결심한 듯 냉장고 문을 닫고 팔을 걷어붙였다. 싱크대 가득 자신이 사 온 식재료들을 늘어놓는 후루야의 눈이 빠르게 움직였다. 주어진 재료로 어떤 요리를 해야 할지 계산하느라 머릿속이 바빠졌다.

 

 

“후후후, 간만에 요리 솜씨 좀 발휘해 볼까.”

 

 

얼마 만이더라. 이렇게 즐겁게 요리에 임하던 건.

 

후루야는 하루의 스트레스가 모두 날아간 표정으로 가스레인지를 켜고,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둘렀다.

 

그 순간.

 

 

「딩동.」

 

“아!”

 

 

후루야는 깜짝 놀라 식칼을 하마터면 떨어뜨릴 뻔했다. 황급히 돌아본 현관문 쪽에서는 명확히 초인종 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설마 아카이가 벌써 돌아왔나 하고 생각이 들었지만, 아카이라면 초인종을 누를 리가 없다고 판단되자 차라리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무도 없는 척을 해야겠군…….’

 

 

괜히 얼굴을 보이면 골치가 아파진다. 후루야는 숨을 죽이며 잠자코 있었다. 초인종의 주인공은 몇 번 똑똑똑 노크를 하더니 포기한 듯 돌아갔다. 돌아가는 발자국 소리에 맞추어 묵직한 짐이 툭!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잠시 후.

 

 

“이 정도면 갔겠지.”

 

 

후루야는 살금살금 거실을 지나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 사람의 모습은 이미 그곳에는 없었다. 대신, 묵직한 택배상자 한 개가 바닥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아무래도 아까 전의 방문자는 택배원인 모양이었다.

 

 

‘뭐야, 택배원이었나.’

 

 

후루야는 다시 부엌으로 향하려다 묘한 호기심이 고개를 들어 다시 현관문을 열고 택배상자를 집어 들었다.

 

 

“아카이가 시킨 건가? 무슨 택배를 시킨 거지?”

 

 

아카이가 인터넷 쇼핑이라니,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고 하니 가끔씩은 할 수도 있겠지. 그나저나 무슨 택배일까. 설마 칼로리 메이트를 대용량으로 주문한 건 아니겠지. 후루야는 현관문을 열고 상자의 정체를 확인했다.

 

 

「수제 도시락 업체……데코벤

 

세트 1번……햄버그 도시락

 

주문일자……XX년 X월 X일」

 

 

“수제 도시락? 게다가 주문일자가 오늘이면…….”

 

 

후루야는 그제야 이해가 되었다. 이 도시락을 주문한 것은 아카이다. 그것도 공안위원회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주문한 것이다. 오늘 후루야가 와서 점심메뉴에 대해서 잔소리한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내일부터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해야겠다 싶어서 주문한 모양이었다. 그런대로 기특하긴 했지만……. 문제는 메뉴였다.

 

 

“애도 아니고, 햄버그 도시락이 뭐야, 햄버그가.”

 

 

후루야는 택배 상자를 거칠게 식탁 위에 올려놓으며 혀를 찼다. 그렇게 고기만 먹고 채소는 안 먹으니까 더 건강이 나빠지는 건데. 게다가 업체 도시락이라니. 아무리 수제 도시락이라고 홍보를 하고는 있다지만 애초에 회사에서 만드는 건데. 조미료 덩어리에 설탕 덩어리, 채소가 들어 있기는 할까. 고기도 싼 걸로 쓸 게 뻔하고. 정말, 그렇게 좋은 머리를 왜 자신의 몸을 위해서는 쓰지 않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

 

 

순간.

 

후루야의 머릿속을 스치는 아이디어가 있었다. 후루야는 급히 택배상자를 열었다. 작은 상자 안에 가지런히 포장되어 있는 도시락통 하나가 보였다. 그것을 꺼내 들자 일회용 용기 안에 들어 있는 햄버그스테이크와 흰밥, 그리고 브로콜리 몇 개와 방울토마토가 눈에 띄었다.

 

 

“그래, 그렇게 하면 되겠어. 들킬 염려도 없고…….”

 

 

도시락 업체의 일회용 도시락을 자신의 가방에 집어넣으며 후루야는 콧노래와 함께 부엌으로 향했다.

 

 

.

 

.

 

.

 

 

잠시 후.

 

후루야는 식탁 위에 예쁘게 포장된 도시락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잘 만들어졌다. 짠맛이 덜 나도록 심심하게 만든 소스를 곁들이 햄버그스테이크 외에도 자신의 주특기인 햄 샌드위치, 삶은 계란을 곁들인 토마토 샐러드, 간 소고기가 들어간 삼각 주먹밥, 마지막으로 예쁘게 토끼 모양으로 깎은 사과. 보기도 좋은 데다 맛도 좋고, 게다가 영양도 풍부하게 다시 만든 후루야 레이표 햄버그스테이크 도시락이었다.

 

 

“햄버그 도시락이 햄버그 도시락이지, 어떤 구성인지 아카이가 알 게 뭐람. 도시락이 있으면 그런가 보다 하고 그냥 먹는 거지.”

 

 

후후 웃으며 후루야는 자신의 도시락을 택배상자에 도로 넣었다. 이걸로 아카이가 도시락의 비밀을 눈치 채는 일은 없을 것이다. 택배상자가 열린 흔적을 교묘하게 감추기만 한다면 결코 진실을 아는 일 없이 도시락은 그의 뱃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택배상자의 열린 흔적을 감추는 것은 공안 경찰인 후루야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

 

 

다음 날.

 

후루야는 아침부터 FBI 사무실의 분위기가 궁금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지경이었다. 과연 아카이가 자신의 도시락을 가지고 왔을지, 혹여나 이상한 점을 눈치 채지는 않았을지, 궁금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별다른 일도 없는데 괜히 그쪽 사무실을 들락거렸다가는 쓸데없이 의심을 살 수도 있다. 후루야는 최소한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는 참기로 했다.

 

 

“저, 후루야 경시님?”

 

“음? 아, 카자미, 무슨 일인가.”

 

“FBI에서 공안 쪽에 요청한 서류가 있는데, 경시님께서 봐주셔야 할 부분이 있어서…….”

 

“아, 미안하군.”

 

 

후루야는 정신을 가다듬었다. 정말 자신이 생각해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춘기도 아니고 다른 사람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서 일을 그르치다니 유치하기 짝이 없었다. 무엇보다 이 사실을 아카이 본인한테 알릴 수도 없는 입장에서, 자신이 허투루 실수를 해 봤자 비웃음거리만 될 뿐이다.

 

 

게다가……. 이런 경험이 처음도 아니었다.

 

이렇게 뒤에서 몰래 기뻐하던 건 조직에서 그와 함께 일할 때 실컷 맛보았다.

 

 

‘스카치는 요리를 잘해요.’

 

 

라이와 스카치, 버본으로서 같이 일했던 시절, 후루야는 아카이에게 한 가지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물론 조직원으로 들어온 이상 거짓말은 일상이나 다름없었지만, 임무와 상관없이 사적인 이유로 거짓말을 처음 한 것은, 스카치가 임무 때문에 외박했던 어느 날 밤이었다.

 

 

‘스카치가 전부 만든 거예요. 감사하게 먹어요.’

 

 

스카치가 요리를 잘한다는 설정도 그때부터 생겼다. 임무에 지쳐 식사도 제대로 못 하던 라이를 위해 직접 요리를 해 놓고도 그 사실을 말하기 쑥스러웠던 후루야는 괜히 옆에 있던 스카치를 끌어들였다. 라이는 다행히 별말 없이 잘 먹어주었고 후루야는 끝까지 스카치 핑계를 대며 라이를 속였다.

 

문제는 스카치를 어떻게 잘 구슬리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이것도 생각보다 손쉽게 끝났다.

 

 

‘저기, 제로, 라이가 나한테 수고 많다면서 고맙다고 하던데, 이게 다 무슨 말이야? 게다가 요리라니?’

 

‘적들을 다루기 쉽게 요리하느라 바쁘다는 의미겠지. 그 놈이 이상한 비유법으로 말하는 게 하루 이틀이냐.’

 

‘그, 그런가? 하긴, 너희들이랑 달라서 난 외근도 많고 외박도 잦으니까 바쁘긴 하지만.’

 

 

자신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납득하던 스카치는 결국, 진실을 알지 못한 채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만약 후루야가 스카치를 이용해서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 그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

 

 

그날 저녁, FBI 수사원들끼리 회식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루야는 이때다 싶어 아카이의 집으로 향했다. 문 앞에는 어김없이 문제의 택배상자가 놓여 있었고, 후루야는 마치 자신의 택배인 양 가지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배달된 도시락은 돈가스 덮밥 도시락. 후루야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정말 이 인간은 탄수화물 중독에 지방 중독이라니까. 도대체 왜 채소를 안 먹는 거야? 셀러리 같은 것도 얼마나 맛있는데…….”

 

 

후루야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앞치마를 두르며 요리를 시작했다. 돈가스 덮밥이라는 일품요리를 주문한 이상, 사이드 메뉴를 많이 만들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덮밥 위에 얹는 토핑을 좀 더 다양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후루야는 자주색 생강 껍질을 조심스럽게 벗겨 얇게 만든 다음 장미꽃 모양으로 마는 한편, 보라색 브로콜리를 씻어 예쁘게 도시락통 안에 수놓고 있었다. 먹음직스러운 돈가스를 튀기는 사이 후루야의 손은 바쁘게 움직이며 계란을 부치고, 꽃 모양으로 무 자른 조각들을 수놓으며 도시락을 장식하고 있었다.

 

 

“돈가스는 느끼할 수 있으니까 된장국을 조금 끓이고……. 음, 귤이나 포도랑 같이 먹어도 맛있겠군. 아카이는 소시지를 좋아하니까 프랑크푸르트 소시지도 몇 개 구워서 넣어주고…….”

 

 

셀러리도 넣어줄까 고민했지만, 아무래도 궁합이 안 맞는 것 같아서 얇게 썬 파를 몇 개 고명으로 뿌리는 걸로 마무리했다. 꽃밭에 온 듯 화려한 색감의 돈가스 덮밥과 된장국, 그리고 과일 후식들이 예쁘게 조화를 이루었다. 후루야는 만족스러운 듯 도시락을 도로 택배 상자에 넣었다.

 

 

“그나저나 어떤 도시락 업체를 이용하는 거지? 데코벤이라고 했나? 배달하는 도시락 종류를 좀 알아 둬야겠군. 도시락 구성이 너무 달라도 의심할 테니까.”

 

 

후루야는 휴대폰을 열어 업체를 검색해 보았다. 제공하고 있는 도시락의 종류는 약 10종류. 육류를 포함한 도시락이 5종류, 채소를 포함한 도시락이 약 2종류. 튀김이나 단 음식을 포함한 도시락이 3종류. 딱 봐도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위주로 하여 구성되어 있었다. 배달은 하루에 한 번씩 매일, 지정한 시각에 자택으로 배송하도록 되어 있었다.

 

 

‘아카이가 매일매일 다른 도시락을 일일이 클릭해서 주문하는 귀찮은 짓을 했을 리는 없고. 그렇다면 랜덤 배송 서비스인가. 매일매일 다른 도시락이 오도록 하되, 어떤 종류인지는 모르게 하는……. 흠, 그렇다면…….’

 

 

후루야는 홈페이지에 있는 재료와 메뉴들을 머릿속에 메모했다. 비슷한 재료를 사용해서 도시락을 만든다면 아카이가 나중에 의심을 품더라도 어떻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오늘은 이 업체 도시락으로 저녁으로 먹어 봐야겠다. 후루야는 아카이의 집을 나오며 발걸음을 서둘렀다.

 

 

***********

 

 

얼마 후.

 

공안위원회에서 아카이와 다시 얼굴을 마주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휴게실 안에서였다. 서류와 씨름하다 잠시 커피 한 잔 하라는 카자미의 부탁에 못 이겨 거의 끌려오다시피 한 휴게실에서, 아카이는 마침 캔커피를 다 마시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후루야 군. 요새 얼굴 보기가 힘든데.”

 

 

아카이는 반가워하며 미소지었다. 후루야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면서 자판기 앞으로 향했다.

 

 

“그런가요? 전 당신 얼굴 본 횟수를 일일이 기억할 만큼 한가하지 않습니다. FBI는 사정이 좀 괜찮은가 보죠?”

 

“그런 건 아니지만 못 할 정도는 아니라네. 그나저나 공안 쪽은 거의 사람들이 잠도 못 자고 다니는 것 같은데, 후루야 군도 건강에는 조심하게. 밥은 제대로 챙겨 먹고 있는 거겠지?”

 

 

그 말이 왠지 마음을 울렸다. 예전 같았으면 칼로리 바로 점심을 때우는 아카이 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은 없다고 비웃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후루야는 기회다 싶어 침을 꿀꺽 삼키며 되물었다.

 

 

“그러는 아카이는요?”

 

 

아카이의 표정을 살폈다. 자신의 도시락을 매일같이 먹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아카이에게서 감정을 읽어내려 애썼다.

 

 

“점심식사는 잘 하고 계신가요?”

 

“잘 먹고 있다네. 이게 다 후루야 군 덕분이야.”

 

“제, 제 덕분이라뇨?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들킨 건가 하고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아카이는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2주쯤 전이었나? 후루야 군이 따끔하게 일러 줬지 않나. 제대로 식사를 하지 않으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준다고. 그래서 그 날부터 바로 점심을 챙겨 먹기 시작했지. 의심스러우면 캐멀이나 조디한테 물어 봐도 좋아.”

 

“그,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지는 않은데요. 먹든지 말든지 상관없어요, 전.”

 

“그런가. 너무 내 얘기만 했군. 후루야 군은 어떤가?”

 

“저, 저야 뭐……. 늘 하던 대로 잘 챙겨 먹고 있…….”

 

 

적당히 대답하려는데 갑자기 휴게실 문이 열리더니 카자미의 얼굴이 쏙 문 너머에서 나타났다. 다크서클로 죽어가는 가운데에서도 그는 똑똑한 발음으로 빠르고 분명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전부 거짓말입니다. 후루야 경시님께서는 거의 점심을 거르는 일이 허다하고, 저희들이 협박 반 애원 반으로 물고 늘어져야만 겨우 젤리 몇 개를 입에 넣으시는 정도입니다.”

 

“……카, 카자미, 무,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이상입니다.”

 

 

탁! 하고 문이 닫히면서 카자미의 모습이 사라졌고, 후루야는 그 다음 순간 따가운 시선을 등 뒤에서 느꼈다. 돌아보니 아카이가 무서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한테는 그렇게 굶지 말라고 말해 놓고 정작 너는 점심을 굶어?’ 라며 따지는 표정이었다.

 

 

“아니, 뭐……. 너무 바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그리고 점심이라면 지금 먹으려고 했어요. 그렇게 쳐다보지 않으셔도…….”

 

“아, 지금 먹을 건가? 그럼 오랜만에 둘이서 같이 먹는 건 어떤가.”

 

“아, 아카이랑요? 제가요?”

 

“외식하러 나갈 필요는 없네. 오늘은 마침 도시락을 가져왔거든.”

 

 

어안이 벙벙한 상태의 후루야를 잡아끌며 아카이는 휴게실을 나와 FBI 사무실 쪽으로 향했다.

 

 

“사실, 요새 아주 좋은 도시락 업체를 알아냈지. 저렴한 가격에 아주 영양도 풍부하고 맛도 좋은 도시락을 매일 신선한 상태로 보내준다네.”

 

 

아.

 

그 도시락은…….

 

내가 싸준 도시락 아닌가?

 

뭐라고 반문할 여유도 없이, 아카이가 FBI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 자신의 자리에서 도시락을 꺼냈다. 익숙한 디자인. 익숙한 도시락통. 틀림없이 어제 자신이 아카이 집에 들어가서 만들어둔 도시락이 틀림없었다.

 

 

“이걸 사 먹고 나서부터 피곤이 싹 가시고 건강 상태도 좋아졌다네. 어서 가지, 후루야 군. 아마 후루야 군도 마음에 들어 할 거야.”

 

“자, 잠깐만요, 아카이!”

 

 

아아, 뭐라고 해야 하나.

 

아카이에게 손을 잡혀 가면서도 후루야는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바쁘게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

 

 

“초밥 도시락이라네. 심지어 2단으로 되어 있으니 마음껏 먹게.”

 

“아……. 네……. 하하…….”

 

 

이게 무슨 꼴인가.

 

자신이 만든 걸 자신이 먹고 있는 꼴이라니.

 

게다가 아카이는 무슨 손자가 밥 먹는 걸 쳐다보는 할아버지처럼 흐뭇한 표정으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은 먹을 생각도 안 하고 연신 후루야의 입이 오물거리는 것만 쳐다보는데, 그건 그것대로 부담스러웠다.

 

 

“저기요, 아카이. 이 도시락은 아카이가 산 건데…….”

 

“난 어차피 매일 먹고 있으니 걱정 말게.”

 

“그리고 사람 밥 먹는 걸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음? 아, 미안하군. 나도 모르게 그만.”

 

 

아카이는 겸연쩍은 듯 고개를 돌렸다. 후루야는 얼굴이 붉어진 것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자리에서 일어나서 정수기 쪽으로 향했다. 찬물을 한 컵 가득 따라 마시려는데, 뒤에서 착 가라앉은 아카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부담을 주려던 건 아니었네. 오랜만에 후루야 군과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상담할 것도 조금 있고.”

 

 

상담?

 

천하의 아카이가, 상담? 혹시 고민상담은 아니겠지?

 

 

“상담이라뇨?”

 

“이 도시락에 대한 것이라네.”

 

 

순간 마신 물이 도로 올라오는 줄 알았다. 후루야는 애써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 도시락이 어쨌는데요? 아까는 그렇게 칭찬을 하시더니?”

 

“사실 이 도시락은 업체에서 주문한 것이 아니라네. 아, 말이 이상하군. 다시 말하지. 나는 도시락 업체 데코벤에서 도시락을 주문했네. 이건 사실이야. 하지만 우리 눈앞에 있는 이 도시락은 그 업체에서 제공한 도시락이 아니라네. 다른 도시락이지. 누군가가 모종의 이유로, 업체 도시락과 다른 도시락을 바꿔치기해서 나에게 먹이고 있던 셈이지.”

 

“………….”

 

“심지어 그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있다네. 이 도시락은 택배상자에 담겨져 현관문 앞에 매일같이 배달된다네. 개폐된 흔적도 없고 테이프가 잘려나간 흔적도 없지. 그러니까 나는 상자 속 도시락이 업체에서 준 도시락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먹고 있었네. 그런데 며칠 전 이상한 점을 발견했네.”

 

“이상한, 점이라뇨?”

 

 

가슴은 미칠 듯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목소리, 떨리고 있지는 않겠지.

 

 

“튀김류나 덮밥류를 주문했을 때 도시락이 필요 이상으로 따뜻했네. 마치 금방 만든 것처럼. 아무리 홈페이지에서 배달시간을 지정할 수 있다지만, 그토록 따뜻한 상태로 배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네. 상자 안에 다른 보온 장치가 들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

 

“그, 글쎄요. 그냥 우연일 수도…….”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건 며칠 전이라네. 혹시 몰라서 업체에 전화를 해서 도시락 구성에 대해 물어보았지. 혹시 토끼 모양으로 깎은 사과나 된장국, 햄 샌드위치 같은 것도 같이 보내냐고 문의를 넣었지만, 돌아온 것은 아니라는 답변이었다네. 나는 업체 도시락과는 전혀 다른 구성의 도시락을 받고 있던 거라네.”

 

“………….”

 

“누군가가 모종의 이유로 업체 도시락 대신 다른 도시락, 그것도 자신이 직접 만든 도시락을 나에게 먹이려고 하고 있는 모양이야, 후루야 군. 만약 자네라면 어떻게 할 텐가? 사실 악의가 느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네. 오히려 업체 도시락보다도 훨씬 더 정성들인 도시락을 먹을 수 있으니 솔직히 입맛도 돌고 감사할 따름이네. 게다가 집에서 없어진 물건도 없고. 정말 맛있는 식사 한 끼를 제공하고 홀연히 사라질 뿐이라네. 그래, 마치 옛날 전래동화에 나오는……. 우렁각시처럼.”

 

“그, 그 우렁각시를,”

 

 

후루야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할 생각이시죠? 엄연히 말하면 가택 무단 침입이죠. 경찰에 신고하실 건가요?”

 

“아니, 그 반대라네. 호기심이 생겨버렸다네, 그 묘령의 우렁각시에게. 아니, 단순한 호기심은 아닐지도 모르겠네. 후루야 군,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을 하는 아카이의 표정에서는 수줍음의 감정이 얼핏 보였다. 약간 얼굴이 붉어진 것 같기도 했다.

 

 

“……그 우렁각시를 꼭 한 번 만나 보고 싶네. 이런 기분을 느낀 건 처음이야.”

 

 

마치……. 사랑에 빠진 소년과도 같은 얼굴로, 아카이는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

 

 

기분이 나빴다.

 

온몸을 휘감은 습기가 마치 장마 속을 우산 없이 걷는 것처럼 불쾌하고 질척거렸다. 하지만 자신이 그런 감정을 품을 자격이 없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떤 의도로 시작되었든 자신의 행위는 스토킹에 가까운 것이었다. 현행범으로 잡혔다면 경시정 승진이고 뭐고 날아갈 수 있을 정도의 중범죄이다.

 

 

‘사랑이라니, 그 아카이가.’

 

 

수년 간, 아카이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계속 외면해왔다. 그 감정의 이름이 단순한 집착, 호기심, 관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그 때의 후루야는 머릿속이 이루어야 할 목표들로 가득 차서 마음을 내어 줄 상대 따윈 없었고, 그런 상대를 가져서도 안 된다고 굳게 못 박아 생각하고 있었다.

 

 

‘스카치는 요리를 잘해요.’

 

 

그나마 감정에 조금 솔직해질 수 있었던 것이, 스카치의 요리로 둔갑된 자신의 요리였다. 라이를 위해 매일 몰래 요리를 만들고 거짓말을 하면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몰래 혼자만의 세상에서 사랑을 하고, 즐기고, 상상을 하는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다. 편리한 짝사랑의 안식처에 숨어서 할 수 있었던 일들이, 이제는 아카이의 한 마디로 인해 수면 위로 나와 버렸다.

 

 

‘그 우렁각시를 꼭 한 번 만나 보고 싶네.’

 

 

우렁각시라는 표현을 쓰며 아카이는 얼굴을 붉혔다. 솔직히 제정신이 아니긴 했다. 스토커나 다름없는 상대에게 애정을 품다니, 보통은 소름끼쳐 해야 정상인데, 아카이는 사랑에 빠졌다고 표현했다. 원래부터 취향이 그랬던 건 아닌 것 같은데, 세월이 지나면서, 자신을 돌봐줄 사람이 없는 생활을 지속하면서, 마음의 안식처가 될 만한 상대를 찾고 있었던 건가.

 

 

그래서, 자신은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은가.

 

우렁각시에게 이미 빠져 버린 아카이를 어떻게 하면 좋은가. 이제 와서 자신이 우렁각시라고 밝힐 수는 없었다. 그야말로 환상이 한꺼번에 깨지면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저렇게 내버려 두기에도 마음이 불편했다.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 우렁각시를 찾아 기다리게 하는 것도 옆에서 지켜보기에는 마음이 아팠다.

 

 

“책임을 져야 하나.”

 

 

이제 짝사랑에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건가. 그 편했던 자신만의 세상에서 슬슬 나올 때가 된 건가.

 

후루야는 괴로운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마치 떼어낼 수 없는 버릇처럼 자신의 손에는 과일이며 채소가 잔뜩 들어 있는 비닐봉투가 잔뜩 들려 있었다. 어느새인가 자신의 발은 버릇처럼 아카이의 집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순순히 인정하고, 마지막을 즐기자.

 

그동안 충분히 즐겼지 않은가. 몰래 요리를 해 주는 기쁨도 충분히 누렸을 터이다. 이제는 그만둘 때도 되었다.

 

 

「딩동.」

 

 

몇 번이나 들었던 초인종 소리였다. 잠시 후, 안에서 아카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 후루야 군, 웬일인가?”

 

 

반가워하는 아카이에다 대고, 후루야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입술이 달싹거릴 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아카이는 그런 후루야의 양손에 들린 묵직한 비닐봉투를 바라보았다.

 

 

“……일단 들어오게. 이야기는 그 다음에 하지.”

 

 

***********

 

 

소파에 앉자 아카이가 커피를 타 주었다. 좋은 향기가 나는 커피였다. 아카이는 후루야의 옆자리에 앉으며 조용히 TV를 켰다.

 

 

“저기, 아카이…….”

 

“이렇게 같은 공간에 둘이서만 있는 것도 오랜만이군. 조직에서 같이 일할 때 이래로 처음인가?”

 

 

아카이는 자신을 배려하려는 건지, 괜히 딴소리를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 때는 후루야 군이 버본이었고, 나는 라이였지. 그리고 스카치도 있었고. 셋이서 티격태격하긴 했지만 그래도 팀워크만큼은 조직 내에서 탑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괜찮았지.”

 

“………….”

 

“특히, 스카치가 많이 도와줬지. 사이가 좋지 않은 우리 둘을 위해서 여러 가지로 힘써준 친구였어.”

 

 

갑자기 스카치, 아니 히로미츠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후루야를 향해 아카이가 말을 이었다.

 

 

“스카치는 정말 괜찮은 친구였어. 요리를 못한다는 것만 뺀다면.”

 

“……………………뭐……,”

 

 

놀라 고개를 든 후루야를 향해 히죽거리며 웃는 아카이의 표정이, 마치 때려주고 싶은 모양을 하며 키득키득 소리를 냈다. 목소리와 함께 옅은 커피향이 같이 실려왔다.

 

 

“뭐, 뭐라구요?”

 

“왜, 그렇지 않나? 후루야 군……. 아니, 우렁각시 군.”

 

 

후루야의 얼굴이 홍당무색으로 빠르게 물들어 갔다. 금방이라도 소리를 지를 것처럼 경악으로 가득한 후루야를 아카이는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

 

 

업체에서 배달온 도시락.

 

공장에서 일괄적으로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따뜻한 도시락통이었다. 도시락을 열자 눈앞에 드러난 건 딱 보기에도 정성이 가득해 보이는 수제 도시락이었다. 이런 걸 회사에서 돈 받고 판다고? 물건을 처음 사 보는 어린애도 아니고, 배달음식이나 업체 음식이라면 일본이나 미국에서 많이 먹어 본 아카이였다. 척 보면 진짜 수제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 수 있었다.

 

 

범인은 알고 있었다. 후루야 경시일 것이다. 언제 틈을 타서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동기는 아카이가 식사를 제대로 하도록 만드는 것이겠지. 다만 그 사실을 아카이에게 알려지는 것이 싫어서 이렇게 귀여운 공작들을 해 놓은 것일 테고.

 

 

정말, 변한 게 없군.

 

 

아카이는 쿡쿡 웃으며 도시락통을 도로 닫았다.

 

자, 이제 어쩔까.

 

아는 척을 해야 할까. 아니면 당분간 모르는 척을 해야 할까.

 

 

아는 척을 한다면, 그걸 빌미로 후루야와 가까워질 수 있을까.

 

모르는 척을 한다면, 계속 후루야의 수제 도시락을 먹을 수 있을까.

 

 

마치 고백 직전의 썸타는 연인들처럼 , 아카이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에 빠졌다. 손으로는 후루야의 수제 도시락을 만지작거리면서.

 

 

************

 

 

.

 

.

 

.

 

 

“아카이?”

 

“음?”

 

 

정신을 차려 보니 식탁에 앉은 채였다. 눈앞에서는 앞치마를 두른 후루야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아카이의 정신이 돌아온 것을 보자마자 걱정을 싹 지우고는 국자를 휘두르며 잡아먹을 듯 도끼눈으로 노려보았다.

 

 

“사람이 밥을 해 줬는데 멍을 때려요? 제정신이에요? 슈이치?”

 

“아, 미안하군, 레이. 잠깐 옛날 생각이 나서 말야.”

 

“옛날 생각?”

 

 

후루야의 질문에 아카이는 말없이 미소를 지으며 밥상을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가게를 차려도 될 정도의 먹음직스러운 차림이었다. 이 훌륭한 요리 솜씨를 자신만 알고 있는 것이 아까우면서도 기뻤다.

 

 

“아, 그거 설마.”

 

 

후루야가 얼굴을 붉히며 홱 돌아섰다.

 

 

“또 그 때 생각인 건 아니겠죠? 내가 당신 집에 쳐들어와서 몰래 도시락 만들던.”

 

“왜, 우리가 사귀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아주 중요한 사건 아닌가.”

 

“아악! 슈이치! 당신 진짜! 그 얘기 좀 그만 하면 안 돼요!? 내가 잘못했다니까요! 몰래 들어온 것, 멋대로 주방 용품 쓴 것들, 전부 미안하다구요!”

 

“음? 레이,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아카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새침한 표정으로 가스레인지 앞에서 계란프라이를 만들고 있는 후루야의 등 뒤로 다가가 가만히 끌어안았다. 후루야가 몸부림을 치며 약간 저항하는가 싶더니, 이미 익숙하게 그의 손길을 받아들이며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

 

 

“오해는 무슨 오해요?”

 

“난 그 때 레이에게 화가 나지 않았어. 오히려 귀여웠지. 얼마나 감쪽같이 인기척을 다 지우고 다니는지. 정말 그 작은 흔적들마저도 하나 안 남기고 나가더군.”

 

“당연하죠. 괜히 공안이 아니라구요.”

 

“어련하시겠나, 후루야 경시정.”

 

 

앞치마 끈을 치우고 난 자리에 드러난 후루야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아카이가 미소지었다. 사랑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목덜미 위에 새롭게 붉은 입술 자국이 새겨졌다. 요란하지는 않지만 집요하게 이어지는 키스 소리가 부엌 안을 가득 채웠고, 결국 후루야는 떨리는 손을 뻗어 가스레인지의 불을 껐다.

 

 

“정말, 슈이치, 요리 중이잖아요.”

 

“불을 끈 건 계속하자는 뜻 아닌가?”

 

“정말, 계란프라이 맛없어져도 몰라요…………으응.”

 

 

자신에게 안기듯 기대는 후루야를 조심스럽게 품은 채로 아카이는 침실로 향했다.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인 후루야의 얼굴이 붉은빛을 띠었다. 이제부터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상상하면서 부끄러워하는 것일까. 하지만 부끄러움뿐이라고 하기에는, 후루야의 얼굴에는 지금의 현실에 만족해하는 행복감이 가득했다.

 

 

……아, 이 얼굴.

 

아카이는 이 얼굴이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웠다.

 

 

“사랑해, 레이.”

 

“흥! 당연한 거 아닌가요. 제가 결혼해 줬는데.”

 

 

후루야가 코웃음치는가 싶더니 스스로 아카이에게 다가와 입을 맞추었다.

 

 

“…………저도요.”

 

 

 

 

 

 

******에필로그******

 

 

 

‘흐음…….’

 

 

때는, 5년 전.

 

임무가 생각보다 간단하게 끝나버렸다.

 

 

원래대로라면 회원제 클럽에 들어가 바텐더에게 말을 걸어 정보를 얻어내야 했던 일이, 다행스럽게도 클럽 회원 중 한 명이 라이가 마음에 든다며 정보를 흘려주었다. 정보료는 키스 한 번. 값싸다고 생각해서 대가를 지불한 덕에 임무가 예상보다 1시간이나 일찍 끝나버렸다.

 

 

그런데…….

 

 

‘들어가야 되는 건가. 아니면…….’

 

 

라이는 현관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불 켜진 부엌에서 즐거운 표정으로 요리 삼매경에 빠져 있는 버본을 차마 방해할 수가 없어서 라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이, 라이, 왜 안 들어가고 있어.”

 

 

스카치가 때마침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라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스카치는 부엌 안쪽을 바라보더니 쿡 웃었다. 대충 상황을 눈치 챈 것 같았다.

 

 

“들어가 봤자 안 좋은 소리만 들을 거야. 일단 물러나자, 라이.”

 

“아아.”

 

 

결국 라이는 적당히 근처에서 시간을 때우다 버본이 요리를 끝냈을 시각에 맞춰 들어가기로 했다. 만약 천천히 먼 길로 돌아 시간을 끌며 들어간다면 그동안 버본이 적당한 거짓말을 지어낼 수도 있겠지.

 

 

‘그나저나…….’

라이는 부엌 안쪽을 흘긋 쳐다보았다. 붉게 물든 얼굴로 프라이팬을 뒤집는 버본의 얼굴에는 생기가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첫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순수하게 미소짓는 얼굴이 마치 10대 소녀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으면서……. 평소에는 왜…….’

 

 

라이는 픽 웃었다. 왠지 타인의 비밀을 몰래 봐 버린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행복감과 두근거림의 감정이 그의 가슴 속을 꽉 채우면서 미안한 마음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랑스럽다.

 

 

그 날 밤, 그 감정을 라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슴에 품었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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