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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정보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번 연도에는 크리스마스는 아쉽게도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닌데요. 오전에는 영하 7º로..." 

 

 모처럼의 크리스마스인데 눈이 안 오다니. 아쉬움이 온몸을 감쌌다. 작년에는 미국으로 잠입수사를 가는 바람에 제대로 보내지도 못했었다. 이번 연도는 이를 갈아서 휴가에 연차까지 냈다. 위에서는 헤어진 구애인 마냥 전화와 메세지, 압박까지 가했지만 이 정도로 일했으면 과분한 휴일이 아닌가. 항상 쉬는 부하들과 다르게 낮과 밤, 주말, 평일, 명절에도 열심히 뛰었는데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쉬겠다 따지니 결국 두손두발 다 들었다. 그전까지 모든 일을 다 끝내야 하는 조건이었지만. 이 정도야 며칠 철야면 되니 흔쾌히 수락했다. 본래 자신에게 그렇게

뜻깊은 기념일은 아니었지만 이번만큼은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 기분 나는 트리는 꿈도 못 꾸지만 쉬는 것만으로 금쪽같았다. '그래도 나름 크리스마스인데 케이크 정도는 있어야겠지' 아우성치는 몸을 일으키면 얼마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

 

 밖에 나오니 얼마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물들어 있었다. 햇살에 비친 호수의 물결처럼 빛나는 조명들과 어디를 걷고 있든지 들려오는 흥겨운 캐럴 노래들은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들뜨게 했다. 

 

"휘핑크림이랑 버터.. 그리고...." 

 

 사는게 간편한 케이크지만 이번만큼은 직접 만들고 싶었다. 기분도 낼 겸 재료와 함께 집을 꾸밀 장신구도 같이 샀기로 했다. 끝마치고 갈려고 하는 순간 장난감 선물세트가 눈에 띄었다. 예전에 가지고 싶어 했던 장난감부터 세월이 많이 흐른 걸 알 수 있는 최신 장난감까지 오래된 기억 속으로 이끌었다. 장난감 앞에서 선물로 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을 보며 가벼운 선물도 하나 사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

 

 어느덧 크리스마스 이브날이 되었다. 집에 있는 자신과 달리 아카이는 일이 밀려있는지 늦게 들어온다는 문자가 왔었다. 밤에 들어온다니 같이 보내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어찌 보면 서프라이즈를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아카이가 오는 시간까지 끝내려면 시간과 달리기를 해도 모자를 판이었다. 미리 장을 봐두길 잘한듯 했다. 조촐한 크리스마스이지만 분위기를 위해 전구들을 달았더니 나름대로 크리스마스 느낌이 났다. '집은 되었고 케이크를 만들어 볼까.' 전에 사다 두었던 재료들을 냉장고에서 모두 꺼내었다. 무슨 케이크가 좋을까. 고민하는 시간마저

달콤한 기분이 들었다. 크리스마스에 맞게 새빨간 딸기와 눈같은 크림 그리고 톡 쏘면서도 강렬한 향의 민트까지. 어느새 먹음직스러운 케이크가 완성되었다. 세팅까지 하고 시간을 보니 아카이가 오기로 한 시간까지 약간의 틈이 남았다. 기념일 데이트는 흔하지 않은 일이니 왠지 모르게 어린아이로 돌아간 것 처럼 들뜨게 했다. 11시 40분.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약간은 피곤해 보이는 아카이가 보였다.

 

"들어와서 옷 갈아입고 씻어요."

 

                                                                  *

 

 막 샤워하고 나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채로 서 있는 아카이를 붙잡았다. 정말이지. 애인이 아니라 대형견

한 마리를 키우는 것 같단 말이지. 그렇게 안 말리면 감기 걸려요.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듣는 건지 한 귀로 흘리는 건지 결국 자신이 직접 말려주고 있었다. 소소한 일상이 어느새 꽃 피었다. 어제 저녁에는 무엇을 했는지,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시시하고  행복한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머리도 다 말랐을 무렵 12시가 되었다는 종소리가 드렸다. 그 순간 서로의 눈을 보고 동시에.

 

"Merry Christmas"

 

 진지하게 말하며 빛치는 눈동자에는 환하게 미소 짓고 있는 자신이 보였다. 이렇게 환하게 웃어본 게 얼마 만인지 이 사람을 만나게 되고 깊은 사이가 되어서 다행이라고,  행운이라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감사했다. 

 

"레이...?"

 

 얼마나 넋이 나가있었던 건지 아카이가 걱정스레 불렀다. 하마터면 깜박하고 준비한 선물도 잊어버릴 뻔했다. 선물이에요. 왜인지 조금 놀란 표정으로 선물을 받아들었다. 평소에 그 정도로 안 해주었는가 심히 고민하게 만드는 표정이었다. 별건 아니었다. 그저 겨울에 사용할 장갑일 뿐인데도 소중하게 사용하겠다니 정말 아카이 같았다.

 

"그래도 조금 아쉽네요. 당신과 있는데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아니라니."

 

화이트 크리스마스일 필요는 없지. 아쉬운 마음을 케이크로 달래고 있을 때, 갑자기 아카이가 눈이 온다고 거실로 와보라고 했다. 나름의 기대를 안고 가보니 창밖에는 눈은커녕 하얀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눈이 어디가 내리고..! 화를 내려는 순간 정말 우연처럼 눈이 내렸다. 머리에 조금씩 떨어지더니 곧 내 옷도 바닥도 눈으로 뒤덮였다. 방 안에서의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언제 뉴스 보면서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는지 진짜 눈 대신 스프레이로 눈을 내려 주는아카이었다. 치우긴 힘들겠지만 자신을 생각해 해준 것을 생각하니 즐거움이 눈처럼 내렸다. 고마워요. 그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창밖에 한 송이, 두 송이 나풀거리며 눈이 내려왔다. 

 

"아카이 저기 봐요!!!"

 

 자신도 모르게 창문을 가리키며 외쳤다. 눈이 오는군. 그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선물 줄게요. 진짜 선물.       

서 있는 아카이에게 다가가 목에 손을 둘렀다. 어디 해보라는 눈빛으로 허리에 손을 두르며 무언의 답변을 받았다. 눈 감아요.  입술이 부딪치고 찐득한 혀가 얽혀들었다. 달콤만 크림 맛이 입 안에 감돌았다.

​퍈(@piyan_con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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